용산공원 주택 공급 검토, 서울시 이어 용산구도 반대 표명

용산공원 주택 공급 검토, 서울시 이어 용산구도 반대 표명
AI 생성 이미지

정부의 주택 공급 확대 드라이브가 서울에서 가장 상징성이 큰 땅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용산공원 일대 전체를 주택 공급 후보지로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공원이 자리한 용산구가 강력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앞서 이 구상을 일축한 서울시에 이은 두 번째 거부다. 용산구의 핵심 논리는 분명하다. 용산공원은 국가적 상징 공간이지, 아파트를 지을 예비 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와 구, 두 겹의 거부

이번 검토 방침을 꺼낸 곳은 세종시에 본부를 두고 나라의 주택 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다. 이재명 대통령 정부에서 2025년 7월 19일부터 부처를 이끌어 온 김윤덕 장관은 용산공원 일대 전체가 주택 공급 검토 대상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먼저 반대한 쪽은 서울시였다. 뒤이어 용산구가 공원을 “국가 상징적 공간"으로 규정하고 주거 개발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강한 반대 성명을 보탰다. 광역시와 자치구라는 두 겹의 지방정부가 잇따라 공개 반발하면서, 국토교통부가 띄운 구상은 현지의 지지 세력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한 처지가 됐다.

한국 언론 논평에 등장한 “공급 먼저, 질문은 나중"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은 이 사안이 공원 하나를 넘어 울림을 갖는 이유를 보여준다. 정부는 서울 주택 공급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규모 국가 관리 토지는 드물다. 용산은 그 두 조건을 동시에 갖춘 희귀한 땅이다.

같은 땅을 둘러싼 한 세기의 역사

이 땅의 이력을 보면 ‘상징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906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이곳은 일제의 군사 시설이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주한미군 사령부가 자리한 용산기지가 됐고, 기지 안에는 골프장까지 들어서 있었다.

이 땅을 민간 품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은 4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1988년 12월 대통령령이 내려지면서 전환 절차가 시작됐고, 그 초기 결실인 용산가족공원이 1992년 11월 옛 기지 부지 약 7만 5900㎡에 문을 열었다. 약 2km의 산책로가 놓였고 한가운데에는 태극기공원이 있다. 반환된 기지 부지에 조성될 훨씬 큰 국가공원은 이 회복 과정의 완성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주택 개발은 바로 그 서사를 중간에 끊는 일이 된다.

반대하는 쪽의 셈법은 단순하다. 외국 군대의 손에서 되찾는 데 한 세기가 걸렸고, 공공 공간으로 바꾸는 정책에만 40년 가까이 공을 들인 땅을 주택 공급 대책 한 건으로 다른 용도에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착이 주택 정책에 남긴 질문

당장의 관건은 국토교통부가 이번 검토를 확정된 계획으로 다루느냐, 아니면 협상의 출발점으로 다루느냐다. 지방정부의 반대만으로 중앙정부의 토지 이용 결정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시와 구가 한목소리로 맞서는 상황에서 이 정도 규모와 주목도를 가진 사업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반대의 근거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에 관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가까운 시일 안에 가능성이 큰 경로는 두 가지다. ‘일대 전체’가 아니라 주변부 필지만 들여다보는 식으로 범위를 좁히거나, 수도권의 다른 공급 후보지로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번 사안은 한국 주택 정책이 마주한 제약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공급에 의미 있을 만큼 큰 땅은 거의 예외 없이, 그만큼 논쟁이 커서 멈춰 서기 쉬운 땅이기도 하다. 정부가 용산 문제를 어떻게 매듭짓느냐는 서울의 다른 곳에서 이 딜레마를 얼마나 세게 밀어붙일 준비가 돼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Sources (3) — Yonhap News Agency · Maeil Business Newspaper · The Korea Economic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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